2023/10/8 갤러리에 출근할 때면 모든 게 지옥 같이 괴로운 날이 있고, 대체적으로 순조롭고 긍정적인 날이 있다. 어제는 전자였고 오늘은 후자인데, 이전의 나날들까지 떠올려 종합해 보면 대체로 같은 수순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특히 오늘은 개운한 기상은 아니었어도 적당한 시간만큼 잠을 잤고,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빠르게 씻었고, 야채주스를 챙길지 말지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을지 말지 정신이 없었지만 새로운 아침 메뉴를 성공적으로 맛봤고, 일찍 출발하진 못 했지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잘 도착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나 자신을 느끼는 것은 그날의 태도를 좌우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도착해서는 차근차근 가져온 점심을 먹고, 수기로 일기를 쓰고 여유롭게 책을 읽었다.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있지 않으니 정신이 맑아서 좋다. 일을 다 처리해 둔 어제의 나와 오픈 시간보다 늦게 들이닥친 손님들에게 빚진 여유다. 어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하지 않고 책이나 읽겠단 생각을 하니 견딜 만하다.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를 느슨하게 완독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읽는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이나 의문들이 소거되거나 하나의 줄기로 합치되는 명쾌한 감각을 얻어서 기분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고닉은 닫는 글에서 자신이 수업에서 논평했던 한 학생의 ‘기억과 마음의 그늘, 꿈에 대한 추상적인 반추로만 빠져들고 있는’ 글을 불러오는데, 나는 그게 내가 글을 쓸 때 걸려있던 덫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하나의 원칙을 세우고 숭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 흔들리지 않는 한 꼭짓점을 중심으로 잡고 있는 것, 고닉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평가의 편파성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이 가는데, 이 책을 읽는 지금 나의 경험이 예시 -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 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아이디어들이 산발적으로 스쳐갔다. 하나는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명작으로 불리는 수많은 에세이들이 삶의 진창이나 기형적인 경험을 담고 있거나 위태롭고 불안한 내면의 초상을 드러낸다. 뒤라스의 글에 담겨있는 욕정과 성애에 대한 소녀의 자각은 방문을 꼭 닫은 채 인터넷에 조악하게 편집한 자위 영상을 올리고 채팅으로 음담패설을 나누는 여자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같다. 아편 중독자의 절망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괴팍한 자기애도 가까이서 본다면 역겨울지 모른다. 문학이라는 고상한 표현 방식이, 혹은 그걸 읽는 삶의 태도의 고상함이 다를 뿐이다. 문학으로 소화하는 그 놀이, 유희의 눈속임이다. 사람은 너무도 개별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완벽히 동일한 개체라서 문학을 통해 누구도 아닌 자신을 만난다. 너절하고, 재수없고, 불행하고, 역겹고…. 그래서 나는 화자가 가진 에토스를 버린 채로 글을 읽고 싶다. 읽히기 위한 페르소나를 만들어내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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